워홀일기 16 일상다반사

 7월도 됬으니 상반기 결산 겸 절반이 지나간 인턴을 정리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어쩐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왜?

워홀일기 15 일상다반사

이번주 내내 비가 온다는 예보에 매일매일 날씨 어플을 확인했는데 방금 우산을 실수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너무 깊어서 손을 넣어 꺼내볼 수도 없는 쓰레기통인데. 그렇게 멀쩡한 우산을 내 실수로 깊숙한 쓰레기통에 넣어버렸다.

이번주 내내 마음에 파도가 쳤다. 밀려 들어왔다가 쓸려나갔다가, 또 다시 밀려 들어왔다가 쓸려 나가길 반복했다.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어리숙한 사람인지 다시 한번 깨닫고 자괴감에 모래에 변명만 가득 늘어놓았다. 파도에 변명은 지워져버렸지만 글을 써야할땐 쓰지 않고 이제서야, 또 한번 실수를 하고 나서야 반성어린 고백을 하는 나는 얼마나 비겁한가. 이 와중에 글 좀 멋있게 써보겠다고 솔직하게도 쓰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속물인지. 지금 당장을 즐기다가 트레인을 놓칠뻔해서 전속력으로 달려야 했다. 엄청난 순간도 아니었다. 그저 유튜브 보면서 아이스크림 2개를 먹었을 뿐이다. 스트레스에 나는 또 다시 폭식을 시작했고 배가 아팠고 잠시 단순한 식사로 속을 달래다가 다시 폭식을 개시했다. 배가 아픈게 너무나도 당연했다. 당연해서 누구를 탓하지도 못했다. 내 특기인데, 남탓하기.

90일이 남았다. 이제 절반 온 셈이다. 절반이나 왔지만 남은 절반이 얼마나 아득하던지. 끝이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시간이 지나가리란걸 알지만 또다시 우울해졌다. 생리전증후군인지, 남은 90일에 암담해졌는지 나는 머리 속이 복잡해졌고 업무에서도 실수를 남발했다. 그 와중에 나는 억울해했고 화가 났고 그러다가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외동같다, 곱게 자란 것 같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었는데 이제서야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 하기 싫은 걸 하지 않고 살아온 사람. 그리고 내가 그랬다. 하기 싫은 건 굳이 하지 않았다. 공부하기 싫은 과목은 그리 열심히 하지 않고 먹기 싫은 건 먹지 않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았다. 사서 고생하는 걸 싫어하고 싫은 걸 참고 견뎌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이렇게 됬다. 이 회사가 너무 싫은데 그걸 참고 견디질 못하니 겉으로도 티가 났고 티가 너무 난 나머지 실수가 넘쳐났다.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누가 사정을 봐주겠는가.

아빠가 간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다. 저번엔 갈비뼈가 부러지고 또 우울증이 도지나 했더니 이번엔 간염이었다. 계속해서 아픈걸 보니 이제서야 부모님의 나이가 실감났다. 50대 중반은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결코 적은 나이도 아니다.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나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걸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늪에 빠져버릴 것 같다. 그때로 돌아가버릴 것만 같다.

워홀일기 14 일상다반사

문득 생각나는 순간들이 있다.

 

 3, 논술학원이 끝나고 엄마가 나를 데리러 왔을 . 가끔 TrafficControl 하곤 하는데,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부모님들을 보면 그때가 생각이 난다.처음 회사에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 부모님들을 보면서 괜히 울컥했다.나도 언젠가 나를 데리러 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캄캄한 ,주차장에서 엄마 차를 기다리던 때가 문득 생각이 났다.그리고 그때가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 이제 와서 깨달았다.

 엄마는 회사다니기 싫다고 말하지만 엄마랑 같이 도서관으로 출근하는게 좋다. 끝나고 같이 퇴근하는 것도 좋다.비록 6시까지 버틴 적이 많진 않지만. 엄마가 퇴임하고 나면 그런 일도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서글프다.그만큼 엄마도 나이를 먹었다는 뜻이니까.아침이면 황정민의 FM대행진을 들으면서 서래마을을 지나곤 했는데, 그것도 언젠가는 문득 생각나는 순간이 되어버리겠지.이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추억이 만들어진다.


1년전 여행이 내게 여운을 준다. 바르셀로네타 해변 한가운데 가만히 앉아 수평선을 한참을 바라보던 순간이 생각났다. 해변에 갈때마다 그때 생각이 자꾸 떠오른다.혼자서 한달동안 여행했던 스페인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아련한 추억이 되었다. 그때는 그저 삼삼한 여행이었는데. 사골처럼 우려서 그런가 지금은 그리운 시간이다. 호주도 그렇게 될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때를 그립다고 추억할까. 모든 순간은 아니겠지만 그리운 순간들이 몇몇 있을 것이다.노을지던 보타닉 가든, 생기 넘치던 The Grounds of Alexandria, 바람을 맞으며 타던 페리,내가 자주 해먹던 피넛버터 토스트,지옥의 장보기 등등.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겠지. 그치만 순간에 나는 멈춰있는 것만 같다. 점으로만 남아있는 같다. 선도, 면도 되지 못한채 점처럼 가만히 웅크러든다.


워홀일기 13 일상다반사

오랜만에 일기를 쓴다.친구가 블로그를 하는데 글을 써서 조금 자극을 받았다. 나는 그런 글은 쓰지 못할테지만 그래도 글을 쓴다는게 어디냐는 마음으로 타자를 두드린다.

 

오랜만에 다시 중도포기 의지가 생겼다. 겨울방학이 다가오는만큼 계속해서 문제를 수정하고 있는데 이랬다 저랬다하는 바람에 몇번을 수정하고 뒤엎고 다시 개선을 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처음으로 혼술에 도전해보고자 아침 10시부터 와인 두병을 사왔다. 어린 동양인 여자에게 아침 일찍부터 사러 오는게 의아했겠지만 친절한 점원 덕분에 내가 사고 싶었던 레드와인과 모스카토를 있었다. 지옥의 장보기로 돌아오는 길이 힘들었지만 그래도 내일까지 버틸 있는 의욕을 얻었다.내일까지 버텨야 술을 마실 있으니까! 온더보더의 나초랑 살사가 먹고 싶어서 최대한 비슷하게 사봤는데 모르겠다. 한국가면 여의도 IFC 가서 온더보더에서 점심먹고 쇼핑해야지.

 

두번째 정부지원금을 받았다. 말은 내가 인턴으로 일한 두달이 지났다는 뜻이다. 정확히는 67일이 지났고 113일이 남았다는 말이다. 사람이 이렇게나 무섭다. 여기서 어떻게 버티나 했는데 두달이 지나갔다. 적응은 했지만 나는 여전히 이곳이 싫어서 허우적거리고 있다.남은 네달을 어떻게 버틸지 궁리하고 있다. 대학원을 알아보고는 있는데 아직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합격은 있을까, 내가 대학원에서 살아남을 있을까, 내가 대학원을 나오고 나서는 무엇을 할까.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삼킨다.

 

엄마의 생신이었다. 음력으로 세는 터라 엄마가 알려주고 나서야 알아차렸다. 급하게 케익이라도 보냈지만 진심으로 축하해주지 못한 같아 마음이 찝찝했다. 답답한 것은 엄마가 호주에 오지 못하게 알았을때 나는 안도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나는 어떻게 생겨먹은걸까, 이지경까지 오게 된걸까. 여기 생활이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에 돌아가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한국에는 가고싶었지만 집에는 가고 싶지 않았다.나는 정도가 좋다 .일주일에 한번씩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런 거리감 덕분에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할 있는 사이.그러나 나는 어쩔 없이 돌아가야하기 때문에 잠시동안 거리감을 즐기고 싶다. 정말 이런 자식이 어디있을까 싶지만 이게 나라서 나도 답답하다. 엄마, 생신 축하해요.

 


워홀일기 12 일상다반사

우아한 주근깨같은 별이 하늘에 가득했다. 그게 이번 워크샵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다.

그렇게 가기 싫었던 워크샵은 결국 한시간 반 넘게 달려서 가자마자 바베큐를 하고 등대를 갔다가 펠리칸 먹이 주는거 보고 볼링을 치고 저녁을 먹고. 재미가 있는듯 없었다. 역시나 워크샵 내내 겉돌았던 나는 결국 대리님한테 왜 자꾸 혼자다니냐는 말을 들었고 결국 피곤해서 그렇다며 애매하게 대답했다. 워크샵으로 갔던 곳은 멋있긴 했지만 자연보다 빌딩숲을 더 좋아하는 내겐 그저 또 다른 한적한 호주였다. 다가왔다. 바베큐로 먹었던 양갈비가 맛있었던게 기억이 나고. 또 뭐가 있지. 회사에서 보던 사람들과는 다른 사람들 같았다. 이래서 워크샵을 가는건가? 내 또래의 인턴들과는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졌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친해지기 마련이니까. 아, 일렬로 밀려들어오는 파도가 아니라 울렁울렁 곡선을 남기는 파도가 기억난다. 아무도 없이 그 선들을 보면서 파도 소리를 듣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나는 편안해졌다. 자발적 아싸에게 있었던 유일한 휴식 시간. 어제 갑자기 생리를 시작해서, 그리고 원래도 술을 안마시긴 하지만 술자리는 정말이지 재미가 없었다. 어차피 정직원은 정직원들끼리, 인턴들은 인턴들끼리 모여서 놀기 마련인데. 그렇게 인턴들끼리 술을 마시면서, 이야기하면서 나는 그 무리에 낀 것도, 안 낀것도 아닌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관찰자 시점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중간중간 동기언니가 담배를 필 때 따라나가서 별을 보곤 했다. 그때가 처음이었다. 담배가 피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게. 이래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강렬한 충동에 한번 펴볼뻔 했지만 결국엔 다시 원래의 나로 돌아왔다. 나는 내가 챙겨야 하니까. 그렇게 나는 담배 대신으로 별을 봤다. 술취한 개저씨와 어색한 인턴들이 있는 방에서 나와 별을 보면서 그렇게 나를 달랬다. 니코틴 대신으로, 알콜 대신으로 별을 봤다.

그렇게 버티다 버티다 누구보다 먼저 방으로 도망갔다. 씻고 널찍한 침대에 누우니 11시 반이었다. 호텔 조식을 놓칠 수 없으니 일찍 일어나 조식도 먹었다. 두 접시나 먹어서 한껏 나온 배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워크샵이 끝났다. 1박 2일동안 M언니랑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알고보니 나랑 비슷한 사람이고 그치만 나보다는 사회생활을 더 잘하는, 훨씬 잘하는 사람이다. 우리가 얼마나 더 친해질지 아직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명이라도 서로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S언니는 나랑은 정반대의 사람이고 서로 그것을 알고 있는데도 처음에는 둘밖에 없었기 때문에 몇번을 만났다. 서로에게 고역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아쉬움은 남지 않았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성향이 다르니까. 그리고 우리는 잘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우리와는 다르게 서로 사이가 좋은 이전 기수 인턴들을 보면서 한때는 부러웠는데 지금은 그 사람들이 비슷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 기수 인턴들은 너무 많이 다른 사람들이고 그래서 나는 혼자서도 잘 살고 있다.

집에 돌아와보니 방이 지나치게 깨끗했다. 순간, 무슨일인지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책상위에 놓인 편지를 보고 나서야 옆 침대의 이불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두달간 같은 방을 썼던, 그러나 그동안 우리가 나눈 대화가 10분도 되지 않을, 룸메는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을 이 집에서 살았는데 그 동안 사람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여러번 봤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책상과 서랍장을 거의 다 내가 써서 약간은 미안했지만 아무말 안해서 너무나 편했다. 그래서 비록 잘 알지는 못하지만 고마운 사람이다. 이제 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겠지.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그저 멀쩡한 사람이길. 그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천천히.



1 2 3 4 5 6 7 8 9 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