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가지 차원의 호기심 접촉


심리학자들은 호기심의 다양한 이점에 관한 수많은 연구자료를 수집해 왔다. 호기심은 지능을 강화해 준다. 한 연구에 따르면 호기심이 매우 많은 3~11세 사이의 어린이들이, 호기심이 그리 많지 않은 같은 나이대의 어린이들보다 지능테스트 점수가 12점 더 높았다. 호기심은 인내와 투지를 높이기도 한다. 호기심이 발동했던 때를 단순히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행복했던 때를 이야기하는 것에 비해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가 20% 더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또 호기심은 업무참여도를 향상시키고, 성과를 높이고, 더 의미있는 목표를 세우게 해준다. 첫 심리학 수업에서 다른 학생에 비해 호기심을 더 많이 느낀 학생은 수업을 더 즐기고 더 높은 최종성적을 받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심리학 수업에 등록했다.

다섯 가지 차원의 호기심 모형은 다음과 같다. 첫 번째 차원은 벌린과 로웬스타인의 연구에 바탕을 둔 결핍 민감성이다. 결핍민감성은 지식의 격차를 인식하고 그 간극을 메울 때 안도감을 얻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 차원은 데시의 연구에서 영향을 받은 유희적 탐구다. 유희적 탐구는 세상의 흥미로운 특성에 궁금증을 느끼는 것이다. 세 번째 차원은 레너의 이론에서 비롯된 사회적 호기심이다. 사회적 호기심은 다른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말하고, 듣고, 관찰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사회적 동물이고 누군가가 친구인지 적인지 판별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그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다. 네 번째 차원은 그린즈버러의 노스캐롤라이나대 심리학 교수 폴 실비아가 최근에 내놓은 연구 결과를 기반으로 한 스트레스 내성이다. 스트레스 내성은 새로움과 연관된 불안을 받아들이고 더 나아가 이런 불안을 동력으로 활용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스트레스 내성이 부족한 사람은 정보 격차를 인식하고 궁금증을 갖고 타인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만 실제로 나서서 탐구할 가능성은 적다. 다섯 번째 차원은 주커만의 이론에서 영감을 얻는 자극 추구다. 자극 추구는 다양하고 복잡하고 강렬한 경험을 얻기 위해 물리적, 사회적, 금전적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타임 인코퍼레이션과는 미국 전역에서 어떤 차원의 호기심이 최상의 결과를 이끌어내고 특별한 이점을 가져다 주는지 알아보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예를 들면 유희적 탐구는 강렬한 긍정적 감정을 경험하는 것과 가장 강하게 연관돼 있다. 스트레스 내성은 유능함, 자율성,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과 가장 강하게 연관돼 있다. 사회적 호기심은 친절하고 너그럽고 겸손한 사람이 되는 것과 가장 강하게 연관돼 있다.

독일 제약회사 머크와는 업무와 관련한 호기심에 대한 태도와 표현을 연구했다. 소속 사업부와 근무지가 다양한 직원을 대상으로 한 다른 연구들을 통해 유희적 탐구, 결핍 민감성, 스트레스 내성, 사회적 호기심이 업무성과를 높여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스트레스 내성과 사회적 호기심이 특히 중요해 보인다. 스트레스 내성이 없는 직원은 도전과제와 자원을 찾아 다니고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이 낮고, 무기력하고 참여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사회적 호기심이 많은 직원은 다른 직원들보다 동료와의 갈등을 해결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사회적 지지를 더 많이 받고 팀 내에 유대관계와 신뢰, 헌신하는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구축할 수 있다. 스트레스 내성과 사회적 호기심이 강한 사람이나 집단은 훨씬 혁신적이고 창의적이다.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미분류

  • 어떤 심리학자들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즉시 내게 '집안에서 부모 노릇을 대신 하는 아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고, 지나치게 일찍 책임을 떠맡았다며 측은하다는 눈빛으로 쯧쯧 혀를 찰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저는 가족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이 역할은 제게 권한과 자율성을 주었습니다. 매우 어렸을 적부터 열심히 일하는 것과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는 기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요리 기술, 아이들을 돌보는 기술, 의사 결정 기술, 사람들을 조직하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또한 나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쿠키를 구워주고, 웃음을 줄 수 있다면, 그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됩니다. 

  • 제가 이 아이들 편에 서서 이 아이들을 힘껏 옹호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래서 지금은 힘든 사람들 편에 서고자 노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죄할 무언가가 있어서 말입니다. 

  • 심리치료사들은 작고 불편한 방에 앉아서 하루에 여덟 시간씩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 사람이 이야기를 하고 나가면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와 무관심한 배우자, 성질 못된 십대 자녀,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상사에 대해 하소연을 합니다. 우리에게 인간에 대한 지속적인 호기심이 없다면, 매시간 그런 대화를 나누는 일은 힘겹고 지루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일을 좋아하는 심리치료사들은 사람들이 곤경에 처하고 또 그 곤경에서 빠져나오는 엄청나게 다양한 방식들에 매료되곤 합니다. 글쓰기 선생님 중 한 분이 제게 이런 조언을 한 적이 이습니다.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삶은 시궁창이다'뿐이라면 독자에게 굳이 폐를 끼치지 마십시오." 심리치료사들에게도 해당되는 조언입니다. 사람들은 지칠 대로 지쳤을 때 심리치료사를 방문합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은 희망에 관한 것입니다. 

  • 심리치료는 에너지와 집중력과 인내심을 요구합니다. 이 일이 특별히 보수가 많거나 명망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만약 당신이 다른 사람들을 돕고자 하는 욕구에 동기가 부여되지 않는다면 이 일을 계속 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심리치료사 해리 아폰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신이 이 일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이유는 사람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어떤 면을 발견하고, 사람들 또한 그에게서 자신들의 어떤 면을 발견하기 때문이라고 말이죠. 존중이 상호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무시 또한 상호적입니다. 만약 사람들에 대한 당신의 기본 감정이 긍정적이지 않다면 심리치료는 당신에게 적합한 일이 아닙니다. 

  • "당신은 이미 가장 힘든 일을 해냈어요. 바로 문제를 직면하는 일 말이에요."

  • 자신이 누구를 도울 수 있고 누구를 도울 수 없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 많은 내담자들이 우리에게 오는 이유는 그들의 주관적 진실들이 뒤틀려 있어 그들의 삶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리치료사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내담자들이 이런 주관적 진실들을 자세히 검토하고 이것들을 더 정확한 현실로 대체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 목소리 톤, 사용하는 단어, 얼굴 표정, 몸짓 등을 통해 우리는 이런 메시지를 내담자에게 전달합니다. "당신과 나는 이 문제 안에 함께 있습니다. 어떤 일이 벌어지든 우리는 그것을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서두르지도 말고 멈추지도 마세요."

  •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의 비결이 '입지'라면 우리 일의 비결은 '연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의 정서, 행동, 생각을 서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이 심리치료사, 그들의 가족,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연결되기를 바랍니다. (과거-현재-미래)

  • 연애의 규칙들은 모순적일 때가 많습니다. 현실적이지만 멋있어야 하고, 섹시하지만 섹스에 집착해서는 안되고, 매력적이지만 상대에게 너무 들이대서는 안 되고, 기대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가길 기대해야 합니다. 

  • 순간순간을 축하하세요. 삶의 모든 순간은 평범함과 심오함이 소금과 후추처럼 뒤섞여 있습니다. 심오한 순간을 포착해 가족들에게 보여주세요.

  • 반짝이는 순간이 찾아올 수 있도록 상담실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세요. 부부는 누가 설거지를 하느냐의 문제에 합의했기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아닙니다. 세부 사항에 발이 묶여서 애초에 그들을 이어주었던 마법을 추적하는 걸 놓치지 마세요.

  • 침착한 분위기를 유지하세요. 침착하기가 힘들더라도 침착하게 행동하도록 요령을 익히세요. 불안, 분노, 절망은 전염됩니다. 감정을 조절하는 걸 직접 보여주세요. 가족들은 격렬한 감정을 처리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희망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가족치료는 격하고, 두렵고, 시끄러울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놀라울 정도로 복잡하고 가족 안에서 이런 복잡성은 증폭됩니다. 하지만 대개 희망은 상황을 더 나아지게 만들어줍니다. 

  • 거의 모든 가정은 시간과 돈의 관계를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 모두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좋은 방법은 가족들에게 그들이 생각하는 부유함의 정의가 무엇인지를 물어보는 것입니다. 저에게 부유함이란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을 1년에 몇 번이나 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내담자들에게는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일 수도 있고 하루에 몇 번이나 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 지역에 따라 날씨의 범위가 다릅니다. 인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감정의 강도와 기분 변화에 있어서 모두 각기 다르게 태어났죠. 매일 토네이도와 맞먹는 감정에 대처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평생 시원한 바닷바람만 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 네브래스카주의 날씨와 로스앤젤레스의 날씨는 각각의 장점이 있습니다. 감정을 깊이 느끼고 감정의 기복이 심한 사람들은 창의적이고, 흥미롭고, 인기도 많습니다. 이들은 대개 인정이 많고, 열정적이고, 감정 표현을 잘합니다. 지나치게 나아가지만 않는다면 모두 좋은 점들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파트너들은 폭풍우같이 종잡을 수 없는 이들의 매력에 피로를 호소할 때가 많습니다. 로스앤젤레스의 날씨를 가진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고 바위처럼 흔들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꿈쩍 없는 바위처럼 둔감하기도 합니다. 이들의 관대함은 감정이 풍부한 파트너를 안정시키거나 혹은 꾸벅꾸벅 졸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심리학자 칼 로저스는 '변화의 역설'에 대해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느낄 때에만 변화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는 것입니다. 변화에 대한 저항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조건입니다. 누가 어떤 사람이 "비판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라고 흉을 볼 때마다 저는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비판을 잘 받아들이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 우리 모두는 자신이 더 나아지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변화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외부에서 변화를 촉구하는 경우에는 특히 더 그러합니다. 우리는 불확실성보다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참담한 문제라고 해도 말입니다. 게다가 최악의 상황이 된다고 하더라도, 자신의 문제를 다른 누구의 문제와도 바꾸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 인간은 자신이 가진 문제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를 잃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변화할 준비가 되었을 때 상담실을 찾아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타이밍입니다. 적절한 타이밍에 제시된 제안은 아주 사소한 제안이라 할지라도 삶 전체를 바꿀 수 있습니다. 

  • 내담자의 저항을 개인적, 감정적으로 받아들인다면 저항을 극복하기만 힘들어질 뿐입니다. 로라, 내담자의 저항을 이용해 당신 자신과 내담자에 대한 정보를 모으세요. 

  • 저는 한나에게 문제가 하나도 없다는 것을 위험 신호로 여겼어야 했습니다. 바쁜 직장인들은 단순히 수다를 떠는 일에 시간당 90달러를 지불하지 않습니다. 

  •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기도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걱정만 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절차이자 신뢰와 관련된 절차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프로이트와 대화하는 것보다 신과 대화하는 것을 더 만족스러워합니다. 또한 기도에는 진단, 치료법, 건강보험 따위가 필요 없죠.

  • 우리는 3루에서 태어났으면서도 자신이 3루타를 친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 결국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사이사이 즐거운 순간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은 힘이 듭니다. 작가 월리스 스테크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삶에 우리의 흔적을 남기고자 하지만 사실은 삶이 우리에게 흔적을 남긴다."

  • 노년은 욥의 인내심을 요합니다. 그만큼 길게 산다면 말입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상처 입은 마음을 안고서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만 합니다. 

  • 헬가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평범한 사람들의 용기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이들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 오늘날, 심리치료사로서 우리의 임무는 프로이트, 버지니아 사티어, 칼 로저스,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일하던 시대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이 가능한 한 계획적으로 선택을 하고, 최대한 친절하고, 활기차고, 진실하고, 적극적이기를 바랍니다. 정신과의사 프랭크 피트먼은 심리치료사의 일이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을 성장시키도록 돕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 식량과 주거지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들을 넘어서 우리 모두는 존중(respect), 휴식(relaxation), 관계(relationships), 결실(results), 그리고 실현(realization)을 원합니다. 존중과 휴식은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관계는 우리가 사랑하고 사랑받기를 원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결실은 우리가 일을 잘 해내기를 열망한다는 뜻이죠. 우리는 잘 살기를 원하고 자신의 삶이 중요하기를 바랍니다. 실현은 자신의 잠재력을 달성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 이 책을 쓰면서 저는 심리치료사로 일하는 것이 제게 있어서 단순히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을 넘어서 저 자신의 삶을 일구어나가는 것 그 자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심리상담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하나의 방식, 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이죠.


내게 무해한 사람 접촉

내게 무해한 사람

특정한 시기에 여러 번 듣게 된 노래에는 강력한 인력이 있어 그 노래를 다시 듣는 것만으로도 당시의 기억이 함께 이끌려 나온다. 『내게 무해한 사람』에 실린 일곱 편의 작품은 재생 버튼을 누르는 순간 잊고 있던 어떤 풍경을 우리 앞에 선명히 비추는, 한 시기에 우리를 지배했던 그런 노래 같은 소설들이다. 그렇게 불려 나온 풍경의 한편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히 멀어진 사람들―그 시절엔 붙어다니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웠던 친구와 연인, 자매와 친척 들―이 자리해 있고, 다른 한편에는 그런 시간의 흐름에도 마모되지 않은 마음이 박혀 있다. 아니, 더 정확히는 오해와 착각, 독선과 무지로 멀어지게 된 한 시절이 담겨 있다.

그 여름

수이의 단단한 사랑을 받고 나니 그렇게 두려워하던 사람들의 시선과 자신에 대한 판단이 예전만큼 겁나지 않았다.

당신은 사랑이 부족하구나. 아무도 당신같은 사람을 사랑해주지 않을 테니까.

이경은 수이가 언제나 하루를 최대치로 살아낸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면서 자기 한계를 극복해나가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이라고.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지 않고,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으려 하고. 이경의 눈에 수이는 힘들어도 힘들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떻게 우리가 두 사람일 수 있는지 의아할 때도 있었어요. 네가 아픈 걸 내가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내가 아프면 네가 우는데 어떻게 우리가 다른 사람일 수 있는 거지? 그 착각이 지금이 우리를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로 만들었는지도 몰라요.

당신도 알고 나도 알고 있어. 걷는 것 말고는 하는 일도 없지만 그저 같이 있어서 좋다는 것을, 어딜 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저 헤어지기 싫어서 이러고 있다는 것을.

그 말을 하기 전까지 이경은 수이가 없는 곳에 행복은 없다고 진심으로 믿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생각을 말로 표현하고 나니 그 말이 껍데기만 번지르르한 거짓처럼 느껴졌다.

말도 안 되는 용서를 비는 수이를 보며 이경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너에겐 아무 잘못이 없어, 넌 나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아니야, 라는 말조차 수이에게 상처를 입힐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말하면서 이경은 그 말이 진실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은지를 설득하기 위해 한말이었지만, 그 말은 오히려 숨겨든 자신의 마음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했다.

걱정하지 말라니, 그것이 버림받는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일까.

은지는 손끝 하나 움직이지 않고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이경을 상처 입힐 수 있었다.

수이는 시간과 무관한 곳에, 이경의 마음 가장 낮은 지대에 꼿꼿이 서서 이경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수이야, 불러도 듣지 못한 채로, 이경이 부순 세계의 파편 위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모래로 지은 집

그런데도 그애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란 태가 났다. 그애의 넉넉함은 물질이 아니라 표정과 태도에서 드러났다. 모래는 사람을 무턱대고 의심하거나 나쁘게 보려 하지 않았다. 무엇이든 전전긍긍하지 않고 애쓰지 않았다. 관대했다.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공무와 나를 생각한다는 모래의 말을 되새겨봤다. 문득 나는 어떤 부끄러움을, 얼굴이 온통 붉어지고 어깨까지 따끔거릴 정도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왜 이해해야 하는 쪽은 언제나 정해져 있을까. 그 문자은 며칠이고 내 안에서 구르면서 마음에 상처를 냈다. 나는 늘 이해하려 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공무의 글을 읽으며 나는 생각했다. 나는 나를 조금도 이해하려 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해하기를 강요받고 있었다고. 어른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나는 그런 노력이 어떤 덕성도 아니며 그저 덜 상처받고 싶어 택한 비겁함은 아닐지 의심했다. 어린 시절, 어떻게든 생존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습관이자 관성이 되어 계속 작동하는 것 아닐까.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네가 뭘 알아, 네가 뭘. 그건 마음이 구겨져 있는 사람 특유의 과시였다.

나의 선택으로 공무를 만났고, 일상을 나눴고, 내 마음이 무슨 물렁한 반죽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금씩 떼어 그애에게 전했으니 공무는 나의 일부를 지닌 셈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와 떨어져 있는 나는 온전한 나라고 할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읽은 소설이었다. 내 독서의 역사랄 것도 없는 지난 날을 돌이켜보면 고등학생 때 책을 열심히 읽다가 대학생이 되고나서는 책을 거의 안읽었다. 인문학을 전공하면서 전공도서로도 충분히 많이 읽고 있다며 놀라울정도로 책을 읽지 않았다. 그렇게 대학 4년을 보냈다. 그러니까 4년간 자발적으로 책을 읽지 않은 것이다. 그러다가 시드니에서 첫 원서를 사면서 긴 독서의 공백이 끝났다. 오죽 심심했으면 책을 샀을까. '신경끄기의 기술',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k를 읽으면서 원서 읽기의 재미를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고 완독을 했다는 성취감에 독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렇게 페이퍼로, PDF로 여러 책을 읽으면서 독서를 꾸준히, 조금씩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주 오랜만에 한국 소설을 읽게 되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한동안 경영, 심리 분야만 읽다가 이렇게 감성적인 소설을 읽으니 낯간지럽고 어색하더라. 알게 모르게 어색한 사이로 지내다가 어제 책을 다 읽었다. 이 설익은 감자같은 책을. 찐 감자는 포근포근 속이 부드럽고 곱게 으깨진다. 그런데 감자가 완전히 쪄지지 않으면 그 속은 덜 익어서 서걱서걱하니 아린 맛이 나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게 설익은, 쉽게 으깨지지 않는 단단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여름이 제철인 감자처럼 이 책도 여름과 잘 어울리는 책이었다. 덕분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것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잊고 지내던 사람, 시간, 공간들이. 설익은 감자마냥 쉽게 으스러지지 않는 기억이다. 항상 감성보다 이성이 앞서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오랜만에 읽은 소설 덕분에 이래서 소설을 읽는구나 새삼스레 느꼈다. 잊고 지내던 기억을 너무 아프지 않게 되살려주는 힘.

8월은 일상다반사

우리는 더 멀어질 것인가, 더 가까워질 것인가? 다음달에 있을 컨퍼런스 준비로 한창 바쁘다. 결국 암묵적으로 10월까지 일하기로 했고 알바생에서 반사원으로 진급하여 매일 출근하고 있다.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과 포스트 코로나를 주제로 하는 컨퍼런스여서 도움을 얻고자 코로나 사피엔스라는 책을 읽었다. 비대면시대이자초연결시대를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혁명적 발걸음에서 우리는 더 멀어질 것인가, 더 가까워질 것인가? 불확실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이 일을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접하게 되고 모르는 분야를 만나게 되면서 생각의 지도가 조금은 넓어진 것 같다. 내지도는 보다 확장되었을지는 몰라도 내 체력은 최저점을 찍었다. 올 한 해 건강이 최악의 상태를 보이고있는데 못해도 두 달에 한번씩 쓰러지는 듯하다. 기면증마냥 머리가 저릿저릿하게 잠이 쏟아지고 손목 통증은낫질 않고 만성소화불량, 만성위Ÿ장염을 달고 산다. 20대가이렇다면 30대는, 40대는? 한때는 남보다 한참은 못한 체력을 가지고 태어난 내 자신이 원망스럽고 억울했지만 세상에 그런 약점 하나 없는사람이 어디있을까. 그러려니 하고 살려고 하지만 빡치는건 빡치는 거다(급발진). 남보다 못한 체력으로 남들과 비슷한수준의 성과를 만들어내려면 두배는 더 노력해야 된다. 노씨발 킵고잉에 존나게 버티는 거다. 회복탄력성이니, 그릿이니 뭐니 해도 역시 나는 존버단이 딱이다. -.

8월 한달간 곧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은 체력으로 일하면서 소소한 행복을주었던 문명특급, 비긴어게인, 미란다. 이 셋 덕분에 우울함과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문명특급보면서 낄낄대고 웃다가 비긴어게인 보고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정화하고 미란다를 보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이 셋 이외에도 예상치 못하게 나에게 힘을 준 사람들이 있었다. 인간관계란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것이, 지난 생일날 아파서 몸져 누워있던 나에게 생일 축하 연락을 보내온 사람들은친한 친구들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친구의 친구인 대학 동기, 5년전에같이 교환학생을 갔던 동기(5년만에 첫 연락이었다.), 시드니에서같이 인턴생활을 한 언니, 같이 일하고 있는 대리님까지. 카카오톡의생일 알람 기능으로 하루에 한번이라도 카톡에 들어갔다면 알 수 있는 생일인데 친한 친구들 대신 친하지 않다고 생각한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은 것이다. 서운하다기보다는 인간관계는 역시 알다가도 모르겠다는 것을 느꼈다. 내맘대로 되지도 않고. 팍팍한 현실에서 이정도 다정함을 가지고 있다면 살아갈 힘이 날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최소한의 다정함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노력하는데체력이 항상 쓰레기라서 다정해질 기운이 나질 않는다. 내 체력 어떡하냐.


번아웃이 오는걸까 일상다반사

일머리도 있고, 일복도 있고, 일하는 걸 좋아하니 열심히 일하고 있고 손목과 팔꿈치가 남아나질 않고 있다. 덕분에 잡생각이 줄어들었다. 사는게 좆같아도 그냥 일하는 거다. 출근하고, 일하고, 점심먹고, 일하고, 퇴근하고, 저녁먹고, 씻고, 잔다. 그런 일상이 반복되면서 손목과 팔꿈치는 잃었지만 멘탈은 보통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문제는 다가오는 대학원 개강을 준비하지 못하고 있고 점점 체력이 바닥난다는 것이다. 항상 피곤하고 울컥 눈물이 날 것 같다. 당장 눈앞에 기회를 잡으려다가 더 큰 기회를 놓치는건 아닐까 싶다. 그치만 이렇게 바쁘게 지내고 싶다, 아무 생각들지 않게.

가족을 싫어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같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고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나와 비슷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과 내가 닮았다는 괴로움이 밀려온다. 특히나 유교걸인 나는 효녀/불효녀 프레임에 사로잡혀있다. 가족인데 그 정도는 참아야지, 니가 이해해야지. 환멸이 나는 가족이라는 틀에 나는 그렇게 붙잡혀 있다. 묶여 있다. 벗어나려고 해도 쉽지 않다. 그래서 그냥 외면하고 있다. 회피성 성격장애답게 문제를 미루고만 있다. 최대한 아빠와 마주치는 시간을 줄이고자 일도 구했고 친구도 일부러 만나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집순이인 내가 집밖에 오래 있다 보니 체력이 점점 줄어들고 회복이 되질 않는다. 최후의 보루로 기숙사까지 생각했지만 일을 계속하게 된다면 기숙사를 들어갈 수 없다. 무엇보다도 기숙사가 최선의 선택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대학원과 일을 병행해보려고 한다. 물론 아직 확정된건 아니지만 최대한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대학원 다니는 알바생을 배려해주는 직장을 구하기 쉽지 않고 일도 너무 어렵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신다. 일도 잘하고 영어도 잘한다며 다음 행사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어이없는 건 나를 웃긴 사람으로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나는 조용히 일만 하는 사람인데 어쩌다 그런 인상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다. 다음에 있을 행사가 규모도 더 크고 주제도 흥미로워서 나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만 항상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되지는 않기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 무엇보다도 대학원을 처음 가봐서 직장과 병행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나를 갈아넣어야할지도 모르겠다만, 차라리 그게 마음이 편하다. 마음 불편하게 집에서 학교다닐바에 손목이랑 팔꿈치 잃으면서 일하고 학교다닐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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