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빨개지는 아이

  

 나는 본래 사람을 사귀는 데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부터 낯선 사람을 만나면 엄마 뒤에 숨기 바빴고 학교를 다닐 땐 누군가가 먼저 말 걸어주길 기다렸고 그리고 지금도,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지만, 어색한 대화의 흐름보다 썰렁한 공기의 흐름을 읽는 게 더 쉬운 사람이다. 그런 내가 친구를 사귀는 방법으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와 친해지고 싶다며 먼저 호감을 표하는 사람을 사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친구의 친구를 사귀는 것이다. 북극성은 후자로 친해진 친구이다. 친구의 친구였고 지금은 내 친구가 된 북극성은 나와 굉장히 비슷하면서도 한끝차이로 서로를 구별 짓는다. 위선보다 진실로, 이기보다 배려로 가득 찬 사람이다. 나는 겉과 속이 다른 진실과 배려로 포장된 이기심으로 채워진 사람이다.

  비슷해 보이는, 그리고 어느 정도는 진짜로 비슷했던 둘은 친구가 되었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나는 소심했던 반면에 북극성은 활기찬 아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마음의 크기를 넓혀갔고 북극성은 마음의 문을 좁혔다. 그리고 지금은 청소를 깨끗이 했는지, 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는지 몰라도 두 사람 모두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렇게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해오면서 나는 스물세 번째 생일을 맞았고 북극성은 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책을 내게 선물했다. 내가 얼굴이 빨개지는 마르슬랭일 수도, 전혀 감기 기운이 없는데 재채기를 하는 라토일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건 두 사람은 친구가 되었고 각자의 고민은 각자의 특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몇 가지 질문을, 아니 그보다는 항상 똑같은 내용의 질문 하나를 던지곤 했다.

-그들은 정말로 좋은 친구였다. 그들은 짓궂은 장난을 하며 놀기도 했지만, 또 전혀 놀지 않고도, 전혀 말하지 않고도 같이 있을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함께 있으면서 전혀 지루한 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분은 부모들이란 어떤 사람들인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부모들은 항상 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고 항상 시간에 쫓긴다…….

-사실, 삶이란 대게는 그런 식으로 지나가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우연히 한 친구를 만나고, 매우 기뻐하며, 몇 가지 계획들도 세운다. 그러고는, 다신 만나지 못한다. 왜냐하면 시간이 없기 때문이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이며,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다. 혹은 수많은 이유들로. 그러나 마르슬랭과 르네는 다시 만났다.

 

원래는 책을 읽고 나서 독후감을 써서 보여줄 생각이었지만 일단 첫 번째로 글을 너무 못썼고 두 번째로 연애편지마냥 오그라든다. 그래서 아마 보여줄 일은 없겠지만 부족한 글로나마 친구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편지


























































































































9월의 일상 일상다반사

어깨가 날로 자라는 것 같다

세번째로 떨어졌다. 이때만 해도 WEST만은 붙을 거라고 생각해서 떨어져도 상심이 크지 않았다.

개강을 앞두고, 마지막 학기를 앞두고 나는 휴학을 고민하고 있었다. 스트레이트로 졸업을 해도 되는건지, 학교는 다니기 싫은데, 휴학 한번 안하고 졸업하기는 아까운데, 그렇다고 휴학해도 딱히 할만한 건 없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 일단 놀고보자로 결론을 내렸다. 뭔지 모를 의무감을 가지고 놀았는데 많이 놀진 못했다. 가자! 떠나자!! 짐싸!!!!!는 더더욱 못했다.

개강한다고 1년만에 머리도 했다. 위메프에서 쿠폰사서 간건데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소셜 커머스 미용실 쿠폰에 큰 기대는 하지 않는게 좋다는 걸 새삼 느꼈다. 5월달에 레이어드컷 한 이후로 머리를 주구장창 기르기만해서 C컬펌을 헀는데 아무도 파마한지 모르는 머리가 되었다^.8

아빠 생신이라 명동 르빵에서 블루베리 요거트 케익 사가지고 돌아감. 선물은 전에 사드렸으니 그냥 케익 비싼거 하나 사야지(내가 맛있는 케익 먹어야지)하고 산건데 맛있었다. 뇸뇸 달지 않고 생크림도 느끼하지 않아서 반은 내가 머금^.<

날씨가 역대급으로 좋았던 한강! 유럽 부럽지 않은 풍경과 바람, 치맥이었다. 매일이 이런 날씨라면 내 성격은 매우 좋았을지도 모르겠지만 일년에 십분의 일조차 안되는 것 같다. 치맥+수다+영화보다가 이상한 사람이 말걸어서 깜짝 놀람.
왜 같이 놀아요..? 우리끼리 이렇게 재밌는데

파리 몽마르뜨 언덕...은 아니고 몽마르뜨 공원
프랑스 꼬마들이 뛰놀고 한국 할머니들이 풀을 캐는 신기한 공원이었다. 정말로 개강이 얼마남지 않아 벤치에 노곤노곤하게 앉아있었다. 사실 도서관가려다가 휴관일인거 까먹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힘들어서 앉은거

내가 개봉을 얼마나 기다렸는가!!! 원제가 콜디스트 시티일때 부터, 촬영짤 뜰때부터 기다리던 아토믹 블론드가 개봉하자마자, 문화의 날이니까 달려가서 봤는데 너무 아쉬웠다. 기대가 컸나, 매카님 얼굴본 건 좋았는데, OST도 좋았는데, 샤를 액션도 좋았는데, 왜 영화는 밍숭맹숭해졌을까ㅜㅜ 감독님 존윅, 시빌워도 하셨쟈나여 왜그랬어여 말해봐여ㅜㅜ 존윅도 담백한 액션영화라 좋아하는데 이건 담백을 넘어 밍숭맹숭... 많이 아쉽다ㅜㅜ
이날 초밥+팝콘+아이스크림 먹고 배탈났다. 그럴만했네..돼지.. 

그리고 기대하던 인턴은 또 떨여졌다. 여름방학동안 4개의 인턴에 지원했고 모두 떨어졌다. 그 중에서 가장 기대했던 WEST 떨어지고 나서 많이 우울했고 괴로웠다. 사실, 떨어질 줄 알고 있었는 줄 알았는데(?), 면접도 잘 본건 아니었으니, 근데 이걸 떨어지고 나니까 2학기를 끝내고 나면 정말 백수 또는 취준생이 된다는게 실감이 났다. 나는 빈 시간이 싫어서 할일을 이것저것 계획해서 하루를 착착착 사는 사람인데 의도치 않게, 원하지 않는 큰 공백이 생겨버렸다. 텅 빈, 그 시간이 무섭다.

큰 위로가 되어준 빨강머리 앤ㅠㅠ 니네 2000년생이라며ㅠㅠ 시즌 2 열심히 찍어주렴...
너네가 내 낙이야

친구가 재밌다길래 정~말 오랜만에 한국영화를 봤다. 이게 무슨 내용인지 전혀 모르고 봤는데, 오늘 하루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은 예감으로 시작하면서 영화 제목이 뜬다, 최악의 하루. 권율은 그렇다치고 이희준 연기나 캐릭터가 세상세상 끔찍해서(연기를 너무 잘해서) 소름 돋았다. 한동안 한국영화는 안봤는데 정말 재밌게 봤고 남산에서의 엔딩을 보면서 나도 함께 최악의 하루를 피곤하게, 노곤노곤하게 마무리하는 기분이었다. 이와세 료가 일본어로 말하는 걸 듣고 있으면 편안해진다.

 문제의 수강신청 정정기간. 도대체 이 학교는 돈이 어디서 나서 매일 공사하고 있는지 모르겠고 돈이 어디로 가서 강의가 제대로 개설이 안되는건지 모르겠다. 필수로 전공과 교양을 듣게 해놓고, 강의는 부족하고, 학생들은 일주일 내내 수강신청 사이트만 보고있고, 심지어는 사고 팔고,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지? 심지어 나는 마지막 학기인데도 김영란법을 들먹이면서 전공기초 수업에 넣어줄 수 없다고 하는 경영대 클라-스... 정말 수강신청 못해서 휴학하는 줄 알았다. 내가 졸업못하면 책임질 것도 아니면서 강의도 꼴랑 50명 정원으로 열어놓고 이게 뭐하는 짓이야 대체 끔찍했다. 끔찍한 일주일의 수강신청 정정기간을 끝내고 끔찍한 시간표를 만들었다.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이고 전공 4개 다 영어 수업이니 내 이름은 프로도로 해야겠다.

 애초에 이 학교에 오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전공이나 부전공에도 애정이나 관심이 없으니 학교다니는게 끔찍하다. 끔찍한 중앙선, 끔찍한 수강신청, 끔찍한 B0룰. 다시는 할 일 없겠지만 다시는 수강신청하고 싶지 않다. 이번 학기가 마지막 학기지만 전혀 아쉽다거나 학교에 더 남아있고 싶다거나 그런 마음 없다. 빨리 끝내고 학교에 안갔으면 좋겠다. 물론 난 아무것도 없는 백수겠지만. 휴학안하길 잘했다 싶은게 4년째 이 학교를 다니고 있지만 어떻게 된 게 마음에 드는게 하나도 없다.

행복 일상다반사

내가 불행한만큼 다른 사람은 행복하길,

미로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다른 사람이 출구를 찾았다는 걸 알면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니까.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일상다반사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


 욕심이 아닐까?


 어렸을 때 부터 나는 욕심이 없었다. 엄마가 1등하면 장난감 사준다고 해도 필요없다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아이였다. 그 이유로는 오빠를 들 수 있다. 어려서부터 항상 오빠는 비교의 대상이 되었고 나에겐 안타깝게도 오빠는 항상 잘난 아이였다. 공부를 잘했던 오빠는 집안에서도, 학교에서도 주목을 받았고 오빠가 의대를 가기로 했다는 결정을 듣게 된 순간 일생의 욕심이 사라졌고 허무함이 밀려왔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치를 알고 있었고 아무리해도 오빠를 이길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누가 전교 1등이고 내가 몇등인 것은 관심 밖의 일이 되었고 엄친아, 엄친딸도 내겐 스트레스조차 되지 않았다.


 무언가를 바라고 원하는 마음이 있다면, 즉 욕심이 있다면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이제 막 불을 붙인 성냥을 보다 더 오랫동안 타오르게 하기 위해, 활활 타오르게 하기 위해 인간은 생산적으로, 효율적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과의 비교가 발생할 것이고 승부욕에서 비롯된 자괴감이나 뿌듯함이 뒤따라올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러지 못한다. 원하는게 없고, 그래서 생산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니, 어떠한 감정도 찾아오지 않은 채 무미건조해졌다. 우울하다거나, 나를 비관하고자 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건조해졌다. 사전 상의 정의대로 분위기, 정신, 표현, 환경 따위가 여유나 윤기 없이 딱딱해졌다.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친구를 오랜만에 만났다. 시험이 끝나면 하고 싶은 게 많다며 엄청나게 수다를 떨었는데 정말 소소한 것들이었다. 예를 들어, 김밥을 싸서 소풍을 간다던지, 라식 수술을 한다던지, 염색을 한다는 것이었다. 나름 버킷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며 들뜬 표정으로 말을 이어나갔다. 러시아에 가서 위스키를 마시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보고 싶다고. 문득 나라면 죽기 전에 꼭 한번쯤 해보고 싶은게 무엇일까 생각해봤는데 딱히 하고 싶은게 없었다. 이대로 죽어도 아쉽지 않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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